20190530 인문학을 하나님께 행복한 십자가 | 작성일 2019.05.30 조회 수:5034 |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남비전교회 한재욱 목사입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윤동주님의 시 「십자가」를 하나님께 드리며 ‘행복한 십자가 사명’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 사이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 윤동주 시인이, 어느날 교회당의 십자가를 올려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행복한 피흘림을 허락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로마에서 십자가는 최악의 형벌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목마름이 있고,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는 모욕과 수치심이 가득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괴로웠던 사나이’라고 말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뒤이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십자가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의미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구원 얻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행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리고 자기 목숨을 못 박아도 좋을 만한 보람 있는 사명의 길을 걸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기꺼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해 흘리겠다고 말합니다. 불과 33년을 사신 예수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이 새도 집이 있는데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예수님은 아무 소유도 감투도 없으셨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신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아버지 하나님께 이렇게 보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4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윤동주 시인이 많이 쓴 언어는 하늘, 잎새,별, 바람, 달,구름,강물, 꽃,숲,추억, 부끄러움 같은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는 주로 아파트, 땅, 돈, 출세, 성공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가치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주께서 주신 사명을 잊고 이런 것들이 삶의 전부인 양 살아가면,안개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윤동주 님의 또 다른 시 「서시」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바람에 스치우는 별은 100년 전 시인이 보았던 그 별이나, 오늘 우리가 보는 별이나 같은 별입니다. 시인이 별을 보고 십자가를 보았듯이, 주님이 주신 별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행복했던 예수님처럼 사명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