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4 극동방송 인문학을 하나님께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 작성일 2018.06.14 조회 수:2021 |
작성자 kh5217 | |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를 하나님께 드리며 ‘축제와 놀이를 회복하세요’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루덴스’는 놀이를 의미하는 라틴어입니다. 호이징가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규정하며,문명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았습니다. 그에게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놀이는 법,정치,예술,전쟁 등 인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문화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었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해 이 세상은 죽도록 일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놀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호이징가는 ‘생각하는 존재’ 인 「호모 사피엔스」나 ‘만드는 인간’인 「호모 파베르」 보다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가 자유와 창조성이 넘치는 인간의 본질을 더 잘 말해준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놀이를 하면서 다른 만물들과 다른 존재로 살아가고, 놀이를 하면서 자유를 느끼고,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인간의 문화는 놀이 속에서 발생하고 전개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모처럼 큰 사냥감을 잡았다고 합시다. 배불리 먹고는 축제를 벌입니다. 춤추고 노래도 부르고 벽에 그림도 그리면서 흥겨운 놀이를 즐깁니다. 내일 해가 뜨면 다시 먹고 사는 일로 골머리를 앓겠지만, 놀이의 순간만큼은 흥과 자유가 솟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류는 놀이를 통해 비로소 한 단계 더 높은 생각을 하면서, 예술과 문화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답다” 라는 말은 “놀이를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이징가는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이 놀이의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합니다. 대신에 욕심에 가득 차서 ‘노동’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놀이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위요, 즐거움을 위한 것이며, 물질적 이해와도 무관하며 이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참다운 인간 행위는 자유에 기초한 것인데 놀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술은 인간 행위의 놀이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회복된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시온와 거리, 천국의 거리를 이렇게 그립니다. 스가랴서 8장 4절에서 5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슥8:5)
“그 옛날 찬양과 평화가 넘쳐나던 전성기의 예루살렘처럼 다시 노인들이 평화롭게 거리에 앉아서 담소를 나눌 것이며, 젊은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재미있게 뛰놀 것이다.” 바로 이러한 내용입니다.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거리! 신나는 놀이가 회복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아닌 사냥터를 가르치는 우리가 부끄럽습니다. 내가 먹지 않으면 먹힌다고 하고,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보이라 하고, 최고의 사냥 총이 있어야 한다는 등. ‘놀이’를 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사냥터를 물려주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쉼표 없이, 심지어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까지도 아까와하며 욕심을 향해 달려는 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하나님 안에 있는 놀이와 축제의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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