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 인문학을 하나님께 만약 내가 | 작성일 2020.04.23 조회 수:1604 |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남비전교회 한재욱 목사입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 「만약 내가」를 하나님께 드리며 ‘이웃을 섬김으로 내가 풍요로와집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만약 내가(If I can...)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 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배워서 남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고,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배워서 남 주지 않는 공부는 썩어 버립니다. 서로의 행복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함께 행복해야 진짜 행복입니다. 박새 같은 작은 새도 나뭇가지를 떠나면, 가지가 부르르 떨면서 그 흔적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박새보다 더 영물인 우리들은 더 큰 흔적을 남깁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연구해 온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면서 그대는 사랑을 주고 받았는가? 살면서 그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가? 살면서 그대는 이곳을 조금이나마 살기 좋게 만들었는가?”
시인 안도현 님의 시 「연탄 한 장」 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시인은 이웃에게 따뜻한 연탄 한 장의 역할을 했던 삶을, 위대한 삶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눔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존재 방식입니다. 사랑을 나눔으로 슬픔은 반으로 줄고, 기쁨은 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줄 수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눔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정한 눈빛과 얼굴, 축복의 인사,반가운 미소,위로의 말과 글,격려의 박수,따뜻한 포옹,함께 있어 주는 것,겸손과 배려.... 이 모든 것이 나눔의 형제들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남에게 많이 나눠줄수록 자신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주님이 채워 주시기에 그러합니다. 게다가 보너스까지 얻게 됩니다. 넘치는 감사와 기쁨, 마음의 행복과 평화, 풍요로움과 따뜻함, 이웃과의 관계 회복 등, 그 보너스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 사람의 가슴 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아픔을 안아 줄 수 있다면, 혹은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2:4)
빌립보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