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하나님께 - 무의미의 축제 | 작성일 2017.10.12 조회 수:2220 |
무의미의 축제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 안에 참 의미가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의미’를 발견해야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 지옥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나와 ‘의미 요법’을 제창한 빅터 프랭클 박사가 발견한 진리도 이것입니다. ‘의미’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세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첫째는, 타락한 의미, 썩어질 의미를 좇아가는 인생입니다. 둘째는, 지금 달려가는 의미가 덧없는 의미라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하면서 ‘무의미의 축제’를 벌이는 인생입니다. 셋째는, 참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좇는 인생입니다. 이 중에서 제일 불쌍한 인생이 바로 두 번째 인생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14년 만에 「무의미의 축제」 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줄거리를 설명할 수 없는 소설입니다. 삶이란 ‘보잘 것 없는 축제’라는 것과,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무의미’를 그렸습니다. 이 책은 네 명의 남자가 늘어놓는 독백이나 대화로 진행됩니다. 그 남자들의 삶은 관객이 없는 배우처럼 보잘 것 없습니다. 노화와 권태, 무기력에 빠진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거짓말이나, 이해할 수 없고 앞 뒤도 없는 농담을 즐길 뿐입니다. 여성의 배꼽에 관한 에로틱한 공상으로부터,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희열을 느끼는 사람, 모두가 모인 파티에서 아무런 무게도 의미도 없이 천장을 떠도는 천사의 깃털... 논리적 연결이 안 되는 정말 의미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쿤데라는 이런 ‘의미 없는 이야기’로, 이제껏 ‘의미 있었다고 속여 온 세계’를 질타합니다. 지난 역사 동안 ‘진지한 정신’을 지녔다고 여겨온 영웅들의 야망, 허영, 거짓말 때문에 비극을 겪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고는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말자고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에요.”
저자는 인간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는, 보잘 것 없음의 축제이며, 이 ‘무의미의 축제’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정말 안타깝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전도서에서 수없이 말씀하셨듯이 하나님 없는 인생은, 그가 무엇을 소유를 하고 무슨 성취를 이루어도 헛되고 헛된 무의미함의 연속입니다. 이 허무한 삶의 본질은 발견했지만, 그 돌파구를 몰라 애처롭게 무의미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인생을 보십시오. 주님을 만나야 생의 참 의미를 발견합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고백을 반복하던 전도서 기자의 이 결론을 들어 보십시오. 전도서 12장 13절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3)
타락한 의미, 썩어질 의미를 좇아가는 불쌍한 인생이 있습니다. 지금 달려가는 의미가 덧없는 의미라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하면서 ‘무의미의 축제’를 벌이는 더 불쌍한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 의미를 발견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