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하나님께 - 욱하는 성질 죽이기 | 작성일 2017.06.01 조회 수:3248 |
욱하는 성질 죽이기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분노 전문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로널드 T 포터-에프론 박사의 「욱하는 성질 죽이기」 를 하나님께 드리며 ‘자기 절제’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행복하고 싶으면 분노를 조절하라.” 이 책의 부제목입니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인생을 망친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욱하는 성질로 인해 감옥에 가기도 하고, 회사를 나가기도 하고, 사업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가정을 깨기도 합니다. 로널드 박사는 ‘욱하는 성질 죽이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욱하는 성질이 있는 사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다. 그 성질을 고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도 위험하며, 주위 모든 사람의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중략). 욱하는 성질이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들은 세상은 무섭고 위험하며, 사람들은 위협적이고,관계는 깨지기 쉽다고 생각한다(중략). 자기의 내면세계 역시 ‘텅 빈 느낌’,‘약하고 자신감 없고 무능력한 실패작’,‘무력감’,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등으로,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욱하는 성질이 있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존재감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태이다.”
그렇습니다.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이 욱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사람을 죽여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특히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주신 힘이 있었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절제력이 없었습니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있는데, 칼집이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폭발적인 감정대로 살아서 주님이 주신 힘을 엉뚱한 데에 쓰면서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로널드 T. 포터 에프론 박사는 욱하는 성질을 6가지로 분류합니다. 돌발성 분노, 잠재적 분노, 생존성 분노, 체념성 분노,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 버림받음에서 비롯된 분노가 그것입니다. 욱하는 것도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것인데, 따라서 그 해결책도 다양하게 접근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느긋함이 없고 조급한 사람, 당장 눈앞에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에 바쁜 사람, 자기 성질대로 반응하고 소리 질러야 속이 시원한 사람,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은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은 큰 상처를 입고, 하나님이 그리는 큰 그림을 볼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욱하는 사람입니다. 욱하는 성질은 ‘성질’ 이 아니라 성화되지 못한 ‘성품’입니다. 욱하는 성질을 ‘기질’ 탓이라고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뒤 끝은 없다”고 자위해서도 안 됩니다. “혈액형” 탓을 해도 안 됩니다. 욱하는 성질은 성화되지 못한 죄성(罪性)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도인 요한은 ‘우뢰의 아들’ 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욱하는 성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온유한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욱하는 성품을 고칠 수 있다는 성경의 예(例)입니다. 욱하는 성질을 죽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 을 달라는 기도에 앞서, “성령의 열매” 즉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싶다는 기도를 드리고, 주님의 성품을 소망해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성품이 보잘 것 없으면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32)
잠언 16장 32절의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