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9월 19일(화) 생각하는 아침 | 작성일 2017.09.19 조회 수:1113 |
‘이름 없는 선교사들의 마을, 블랙마운틴을 찾아서’ 지은이 : 한병선 펴낸이 : 홍성사 먼저 북장로회 소속의 루이즈 그러브, 우리 말 이름 서수복 선교사를 만나러 갔다. 이분의 남편은 40년간 대구와 안동에서 활발히 선교활동을 펼친 구의령 선교사다. … 한국에서 자료를 수집하면서 이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대구와 안동 노회에 전화해 봤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 … 그녀는 한국에 있으면서 세 자녀를 낳고 길렀다. 그녀는 그것이 무척 잘한 일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 인터뷰 내내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과 무척 행복했다.”, “내 삶 중에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시간은 바로 한국에 머물렀던 40년이었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__ 39~41쪽
한국 이름 부마리아로 불리는 마리엘라 탤메이지 프로보스트 선교사. 그녀는 전남 광주 지역에서 한국 이름 타마지로 불리며 사역한 탤메이지 선교사의 막내딸이자 한국에서 부례문으로 불리는 프러보스트 선교사의 부인이다. … 이분은 그렇게 평생 선교사로서 살아오셨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도 미국에 와서 많은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헌금을 모아 가셨다. “당신이 5달러를 내면 한국에서는 한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전쟁통에 고아와 학생을 거두며 그렇게 헌금을 모아서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__ 122쪽.
윌슨 선교사는 아버지 윌슨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당시 한국의 의료수준은 한약방가 무당이 전부라서 환자들은 거의 손 쓸 수 없을 만큼 나빠져서 왔다고 한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여자에게 무당이 긴 막대기를 뱃속에 넣으라고 해서 그것을 먹은 여자를 수술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녀 뱃속에는 거의 20센티미터가 넘는 나무토막이 들어 있었다. … “한국으로 오라. 이곳에는 수술을 할 기회가 많다. 지난주에는 20년 동안 앞을 볼 수 없었던 여인의 눈을 수술했다. 그녀는 볼 수 있게 되었다며 매우 기뻐하며 집에 갔다…” _윌슨의 편지 / __ 184쪽
[오늘의 생각] 1.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선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을 다시 한 번 묵상해봅니다. 2. 역사의 암흑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선교사들의 삶을 기억하며, 현재 이 나라가 처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도우실 하나님을 묵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