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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만불의 딸아이
작성자 권*무2025.06.09
육백만 불의 딸아이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기적의 삶

우리 딸아이는 올해 마흔 살입니다.

나는 가끔 딸아이를 ‘육백만 불의 아가씨’라고 부르곤 합니다.

지금까지 딸아이를 위해 들어간 병원비가 대략 육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60억 원이 훌쩍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천만 불도 훨씬 넘어섰겠지요.

딸아이는 국내에 20여 명밖에 없는, 아주 희귀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약 2천 명 정도만이 이 병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치료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달 약값이 3천만 원, 1년에 3억 6천만 원.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전에는 모든 치료비를 사비로 감당했습니다.

약은 있어도 너무 비싸 손조차 댈 수 없었고, 많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 딸아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유치원 입학을 기도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성악과로 대학에 들어갔고,

그리고 결국 4년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 모든 기적의 시작에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딸아이의 병을 알게 된 날부터 오늘까지, 단 하루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울지도 않았고,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우리 사정을 몰랐을 정도로,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복지부, 국회, 구청, 학교, 사회단체…

딸아이의 삶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 제도를 바꾸고, 법을 만들고, 의료보험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수많은 희귀병 환자들이 조금 더 덜 고통스럽게, 세상을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 세상에 말하지 않은 아내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5년 전부터 딸아이는 코마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말을 하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매일 아침 딸아이와 인사를 나눕니다.

"딸내미, 잘 잤어?"

그 말을 아내는 오늘도 합니다. 딸이 들었을지 아닐지조차 알 수 없는데도요.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합니다.

가끔은, 이유 없이 아내에게 화가 나기도 합니다.

너무 헌신적인 모습이 가슴 아프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제 칠십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런 삶을 언제까지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도 버텨냈습니다.

그 자체가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1년 전,

아내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사도, 가족도 회복은 어렵다고 했지만

4개월 만에 아내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아마 딸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그 의지 때문이었겠지요.

하느님이 손을 내밀어주셨다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몸도 마음도 지쳐갑니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무릎도 자주 아프다 합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아직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쉬고 싶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작게나마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내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휴가를 주세요.

바다를 보며 혼자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만…"

이제까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손을 벌린 적은 없습니다.

그게 저의 자존심이자,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하느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매주 새벽, 교회에 갑니다.

기도는 간단합니다. 아무 바람도 담지 않습니다.

"다음 주일에도 교회를 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짧은 기도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습니다.

형제, 친구, 지인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딸 하나만을 향해, 달려온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살아낸 것도 잘한 일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 아내를 세상에 자랑하고 싶습니다.

팔불출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아내라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아내의 삶을 누군가 글로 쓴다면, 아마 몇 편의 드라마와 장편소설이 나올 것입니다.

아내는 딸의 아픔을 남에게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동정받거나, 불쌍하게 보이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내는, 우리 가족은, 그리고 우리 딸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지금, 딸아이는 마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야겠지요.

그 이후가 너무 두렵습니다.

하느님,

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루라도 먼저 제가 딸아이를 고히 안아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내는 이제 혼자서 아이를 돌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혼자 두면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세상에 내보내고자 하는 이유는,

동정을 바라거나 도움을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단 하나,

제 삶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울림을 주고 싶습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2025년6월9일 새만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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