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5 인문학을 하나님께 시지프 신화 | 작성일 2019.04.24 조회 수:4091 |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남비전교회 한재욱 목사입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알버트 카뮈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하나님께 드리며 ‘성도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산정仙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알버트 카뮈의 「시지프 신화」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지프스(Sisyph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교활하고 영리해서,신들까지도 속일 정도였습니다. 제우스가 죽음의 신을 보내도 그를 속여 가두어 버렸고,어쩔 수 없이 저승에 갔을 때는,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여,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살았습니다. 이렇듯 신을 속이고 농락한 시지프스에게 제우스는 최고의 형벌을 내립니다. 그것은 큰 바위 돌을 산꼭대기에 올리게 하고, 돌을 다시 떨어 뜨리고, 그것을 다시 올리게 하고, 다시 떨어 뜨리고, 다시 올리는 행위를 무한 반복하게 하는 벌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죄를 범한 시지프스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게 하여, 죽음보다 더 큰 형벌을 주었습니다. 제우스는 인간이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은 ‘고된 일’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뮈는 이 신화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합니다. 이 무의미한 일, 부조리한 일에 굴하지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일을 오늘도 해내고 있는 시지프스를 ‘행복한 시지프스’ ‘영웅’으로 그린 것입니다. 자살하면 이런 무의미와 부조리가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끝내 돌을 굴리고 있는 시지프의 행위를 가리켜 ‘반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항’ 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우스가 죽음보다 더 큰 형벌로 시지프스를 파멸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조리한 운명에 반항하며 돌을 굴림으로, 다시금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면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그리하여 제우스의 의도를 이겼다는 겁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깊은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몇 사람이나 이 무의미한 돌 굴리기를 버티며, 끝까지 반항할 수 있을까요? 아니, 누가 이러한 반항을 하며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카뮈는 오늘도 돌을 굴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무엘 베케트는, 오늘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부조리한 고난을 받으며 참 오랫동안 돌을 굴렸고, 오랫동안 ‘고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돌을 굴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점이 카뮈와 사무엘 베케트의 주장과 명백히 다릅니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결산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8)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은 무의미한 돌을 굴리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선교하고 구제하는 일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뿌린 생명의 씨는,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마침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