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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참여 게시판

나를 구원한 극동방송...!

2020.01.13 17:49

안리찬 조회 수:1214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제가 존경하고 영적 멘토이신 김장환 목사님께,

언젠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오늘 용기 내어 해 보려합니다.

두서없는 글에다 누군지 정체도 모를 아이의 글을 읽어 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오늘은 방송을 듣다가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목사님 음성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멎자 적어 봅니다.

이글을 보시지 않는다 하여도 제가 목사님을 존경하고 극동방송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아주세요.

그럼 잠깐 두서없는 제예기를 잠깐 해 보겠습니다.

 

196710월 어느 날 주님의 예비하심에 따라 저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저의 가족은 대대로 불자 집안으로, 저희 모친께선 집안에 신주단지를 두며 조상을 섬기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며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모친께는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혼자 나와 알바를 하며 중, , 대학교를 졸업을 하였습니다.

졸업 후 여느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들처럼 군대를 갔고, 평범한 군생 활은 싫어 3사단 수색대대에 자원하여 재미있는 군생 활을 마치고 재대하여 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제대 후 3일이 지나자 더 이상 좀이 슈서서 놀수가 없어 그 당시 백화점에서 일하던 친구를 찾아가 소개 받은 직장이 제일모직이었고 그 인연으로 의류매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의 은혜로 기적같이 입사를 하고, 기적 같은 기회로 의류매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은 순탄대로를 달렸고 생각지도 않게 많은 돈을 벌게 되었죠!

어린 나이에 제법 좋은 차에 카폰까지 장착하고 소위 야타를 하며 그렇게 재미있는 20대를 보내었습니다.

이후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도하고, 등산, 스노클링, 골프, JC, 동문회등 많은 모임을 통한 활발한 대인 관계를 가지고, 궁금한 거 하고 싶은 건 다하며, 해외여행도 마음껏 하며 그렇게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제 인생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고, 당시 40까지만 일을하고 남은 생은 세계여행을 하며 살리라는 거창한 계획도 세워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언제가 부터 조금씩 사업에 이상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저희 부모님께선 평소 건강이 좋이 않으셔서 아버지는 영남대병원에 어머니는 동산병원에 정기적으로 드나 드셨는데 병원비가 일 년에 1억 원 정도 소비될 정도였습니다.

저의 파산선고는 사실상 저희 가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던 나였기에 그 여파는 상상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때마. 춰 모친께서 새벽에 뇌출혈로 쓰러지시며 동산병원에서 1차 수술 후 다시 2차 수술을 앞둔 상황까지 이르렀을 때 다시 고배는 찾아옵니다.

집사람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해왔고 너무 화가 난 저는 마음대로 하라며 전권을 마 꼈고 저희의 이혼 소송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성사 되었고 아이들은 데려가지 않겠다는 집사람의 조건에 제가 맡기로 하고 그렇게 우리는 해어졌습니다.

헤어질 때 마지막 남은 전 제산을 모두 주어 보낸 건 다시 돌아오리라는 저의 착각 때문이었고 결국 그때일은 저의 착각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결국 모친은 코마(뇌사상태)2년의 힘겨운 투병후 마지막 중보 기도에 한 방울 문물로 화답하며 그렇게 주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모친은 끈질긴 동생의 기도와 여러분의 중보기도로 마지막엔 주님을 영접했음을 눈물로 화답 하셨다고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이혼 후 저는 마을 잡지 못하고 삶에 의미도 의지도 없어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게 됩니다.

트렁크에 낚시도구를 실고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날 여행을 그만두리라는 계획 하에 떠났고 그 시간은 얼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 드디어 그날이 되어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해가 저문 저녁 나는 대구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평소 참선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삶과 죽음은 손바닥 앞, 뒤와 같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 그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기에 길지 않은 삶 동안 남들이 평생 못해볼일 다 해봤고 더 이상 해보고 싶은 것도 없으니 사나이 인생 이정도면 충분하였다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삶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 이었으며 시내로 들어온 나는 마지막으로 두산오거리에 위치한 카페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곳엔 예전에 제가 공사에 참여하였던 카페가 있었고 어쩐 일인지 그곳에서 생에 마지막 커피를 한잔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에 들어서 마지막 커피를 시키고 앉은 곳에서 운명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10여년 만에 만난 그녀는 친구 여동생으로 그 친구 또한 이혼의 상처를 안고 영천 친정으로 내려왔고 그날은 보험사 직원을 만나러 왔다 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반가움에 자리를 함께하였고 그 친구는 어두운 내 얼굴이 안서러웠는지 지나가는 나지막한 말로 커피잔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습니다.

힘들 땐 주님께 기도하면 되는데...“

순간 저는 깜짝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금방 뭐라고 했어?“

동생은 평소 내가 어떤 불자였는지, 내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를 잘 아는지라 무척 당황해 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려 했지만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내가 화내려는 게 아니라 방금 한 얘기를 다시 듣고 싶어서 그래!”

그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만나면 모두 해결 되거든...”

나는 태어나 한 번도 교회를 가본적은 없지만 어릴 적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 앞 까지는 몇 번이나 갔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을 할까?

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저는 모친을 실망 시켜 드릴 수 없어서 차마 교회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커서는 출장으로 서울을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제일먼저 명동성당을 들러 습니다.

웬일인지 성당 안에 있으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래, 죽기 전에 교회나 한번 가보자, 내가 하고 싶은 건 다해봤는데 교회는 못가 봤네...

그리고 동생에게 교회를 가자고 했더니 처음엔 안 믿는 눈치였던 동생이 나의 진심을 알고 들뜬 음성으로 그래, 그럼 어느 교회를 가고 싶어?” “너는 어디 다니는데?” “나는 시골 작은 교회에 다니는데 오빠랑은 좀 안맞을 것 같아그래 그럼 큰 교회로 가자 법회도 큰 법회를 가야 기적이 일어나거든...“ ”그래, 그럼 반야월교회에 친구가 성가대를 하는데 그곳으로 가자, 꽤 규모가 큰 교회야..“ ”알았어 내일 일요일이지, 내일 가자! 내가 일이 있어서 내일 가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럼 내일 11시에 교회 앞에서 만나..” 우린 그렇게 약속을 한 후 해어졌습니다.

 

사실 나는 다음다음 날인 월요일을 D-day 정하고 나무에 매달 밧줄이랑 유서를 다 준비 해둔 상태였습니다.

평소에 좋아했던 팔공산 정상 부근 양지바르고 조용한 곳을 모색해둔 상태였죠!

죽기 전 마지막으로 교회라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12729일 주일 생에 처음으로 교회로 발걸음 하게 됩니다.

주일 113부 예배를 위해 반야월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당 계단을 오르는 순간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에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순간 아무런 이유 없이 감정이 북받쳐 올라 왔습니다.

이게 뭐지..? 뒤돌아 가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나는 떠밀리듯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고 뒷자리에 황급히 자리하고 않았지만 좀처럼 감정이 추슈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목사님의 말씀이 시작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갑자기 말씀 내내 목사님은 저를 향한 호통을 치셨고, 저는 이유모를 감정으로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누군가 건네준 티슈로 연신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가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두 다리와 엉덩이는 의자와 하나가 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등에는 누군가 계속 기름을 부으며 불을 집힌 듯 뜨거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미친 듯 예배당을 뛰쳐나와 길 건너 롯데리아 2층으로 올라가 진정되지 않은 감정을 추수려야 했습니다.

잠시 뒤 저를 인도한 동생과 몇 분의 아주머니(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권사님 이었습니다)몇 분이 함께 제가 있는 곳으로 왔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조심 서럽게 있었던 경험을 나누었더니 성령이 임제 하셨다고?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며 없는 경우는 아니나 흔한 경험은 아니며 복이라시며 주님을 열심히 섬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갔던 주간은 특세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특세 기간이니 새벽 예배에 나와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네 라고 대답하고 그날부터 지금 까지 새벽 재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정착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배정 되었던 바나바도 어찌된 일인지 새가족 6주 교육이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성경을 보려고 물어 보려해도 물어 볼 곳이 없었습니다.

새벽 예배에 처음으로 나간 날 기도가 무엇인지 몰라 저는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답니다.

이제 제 삶을 드립니다. 저를 인도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했었고 일자리도 주셨지만 수익은 그저 먹고 살 만큼 주셨습니다.

불평불만도 많았고 어떻게 물어야 할지, 따져야 할지 몰라 그저 눈물로 보내던 나날 중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 주파수가 멈춘 곳에서 찬양이 흘러 나왔고 얼마 만인지 모를 마음의 안정이 되어왔고 뒤이어 나오는 목사님 말씀은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기독교 방송인지 알았던 그 방송은 극동 방송 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신앙 스승으로 자리하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저와 함께하는 방송이 되었습니다. 궁금한 거 모르는 건 문자나 전화로 문의하며 저의 신앙은 그렇게 느리지만 조금씩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극동방송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다시 삶을 포기했거나 이방신 섬김의 자리로 돌아갔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방송을 듣다가 소망에 기도시간에 많은 기도를 부탁드렸고 상담실을 수시로 전화해 이런 저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질문이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질문 이었을 텐데 전화기 너머에서는 언제나 친절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기도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극동방송을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시오!

이제 물질은 주시면 힘써 섬기겠습니다.

일일이 다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저의 대부분의 기도 응답은 극동방송의 찬양과 말씀을 통하여 주셨고 그러는 과정에서 저는 많이 달라진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장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전파 선교사 라는게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섬겼고 모친께서 소천 하셨을 때는 때마 춰 제게 주신 물질이 있어 일시불로 섬길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 구원은 여동생의 눈물어린 25년간의 기도 덕분 이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주님을 만난 후 알게 된 사실은 제 여동생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모친으로부터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참고 견뎠고 결혼한 매제와도 결혼 조건이 교회에 출석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여동생이 지금 유방암 투병 중에 있어 다시 한 번 제 삶에 큰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주님께 죄 많은 저를 데려가시고 동생을 살려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동생과 그 가족의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 실겁니다.

온 가족이 교회를 향한 그동안의 헌신이 헛되지 않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30일 있을 수술에 힘모아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매일 매일을 영적 전쟁을 벌이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지만 주님을 향한 열정, 섬김의 의지는 매일 매일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갑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물질을 주신다면 당장 방송국으로 달려가겠지만 저의 죄가 얼마나 큰지, 저의 믿음이 얼마나 자라지 않는지 아직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언젠가 제게 섬김의 자리에 설 기회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이 안 계시는 공간은 상상이 가지 않아요...!

오래 오래 강건하시고 저희를 이끌어 주셔야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 하신다면 언젠가 만나 뵙고 안수 받을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기다려 주셔야합니다.

힘차고 뜨겁게 저를 안수 해 주실 체력과 정신으로...

목사님!

사랑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멀리 대구에서 안선현집사 배상.(010.3526.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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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정보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
금요일 13:00~13:45
제작 이인성, 오상균 / 진행 김장환, 최혜심